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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 쿠메이

연성님 그림 보고 쓰고 싶은 장면 써내기

지잉- 지잉-

 

밖도 안도 깜깜한 집 안, 누군가에게서 온 전화에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만이 존재를 비추었다. 계속해서 오는 진동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는 몇 번씩 꿈틀거리더니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이불을 확 젖혀 울리는 핸드폰을 잡아챘다.

 

“자는데 왜 자꾸 전화질이야!”

“나츠! 여기 좀 제발 와주라!!”

“…뭐야, 무슨 일인데.”

 

누구한테 전화가 왔건 자는 데 방해를 한 것에 버럭 소리치던 나츠는 살려달라는 듯 외치는 다급한 목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화를 죽이곤 무슨 일로 전화한 것인지 물었다. 어떻게 된 경위인지 설명을 들으려고 하면, 폰 너머로 칭얼거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뺏는 거야! 더 먹구 싶단 말이야~~!】

【안 된다. ..정말, 누가 루시한테 술을 마시게 한 거냐?】

【엘자, 잘 막고 있어. 더 마시게 하면 안 돼!】

 

술에 취해 더 마시고 싶어 칭얼거리는 루시의 목소리와 그런 루시를 막으려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 루시, 친구들이랑 저녁 먹고 온다고 했지. 그래서 늦을 거라고 얘기했던 걸 까먹고서 먼저 자고 있던 나츠는 골치 아프다는 듯 머리를 헤집었다. 가볍게 끼니만 채우고 올 거라 생각했으나 술까지 먹게 될 줄 알았다면 술은 절대 먹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건데. 자책했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진 뒤였다.

 

“곧 갈 테니까 장소, 문자로 찍어.”

 

나츠가 온다는 말에 전화를 걸었던 그레이는 살았다고, 되도록 빨리 와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자다가 웬 날벼락인가 싶겠지만, 어쩔 수 없다. 루시는 제 동거인이니까, 반쯤은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루시와 동거한 지는 꽤 됐다. 동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별거 없었다. 혼자 살기엔 돈이 안 됐고,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어 고민하던 때, 그녀도 마침 그쪽 일로 고민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녀는 돈을 반씩 나눠 내는 것으로 같이 사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끼니라면 자신이 챙겨줄 자신이 있다면서 말이다. 좋은 제안이긴 했다. 돈을 나눠 내면 부담도 덜 할 것이고, 끼니 걱정도 줄 것이니,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동거 제안을 받아준 것에 휘둥그레지더니 혼자 사는 건 불안했는데 나츠랑 산다면 든든할 거 같다고 좋아했다. 가끔 부딪히는 일이 있긴 해도 그녀와 사는 것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 혼자 살 곳을 마련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내가 루시를 보던 시선이 달라졌다는, 문제.’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처음엔 그저 남자 사람 친구 관계로 이어왔으나 학교에 있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녀와 같이 지내다 보니 그녀의 좋은 점을 알게 되고, 몰랐던 그녀의 매력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동안 남자들이 왜 그녀에게 치근덕대는 건지 이해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문제는 결코 좋은 쪽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곤 꿈에도 모를 텐데.’

 

이런 생각을 루시가 알기라도 한다면, 집에서 쫓겨나는 건 물론이고 친구 사이조차 지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상상만 했을 뿐인데 오소소 돋는 소름에 나츠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 제가 상상했던 내용을 지워 내버리곤 어서 루시가 있는 곳으로 가자며 의자에 걸려있던 가디건을 챙겨 갔다.

 

 

 

*

 

 

“나츄~.”

“나 참….”

 

갔을 땐 이미 루시는 술에 고롱고롱 취해 있었다. 루시의 손을 잡고 어서 집에 가자고 나서려던 나츠는 멈칫했다. 안 그래도 팔이 다 드러난 옷을 입고 있는데 술기운에 몸이 뜨거울 루시가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맞으면 감기 걸리기에 십상이었다. 잠깐의 고민도 없이, 나츠는 자신이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루시가 가디건을 입게 했다. 조금 큰 가디건에 헐렁하긴 했지만, 아예 안 입고 있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며 지퍼까지 단단히 매주었다. 루시는 제 손등까지 가릴 정도로 헐렁한 소매에 팔을 흔들다가 재밌다는 듯 실실 웃더니 크다~, 길게 늘어트리며 말했다. 허벅지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가디건은 치마가 바람에 살랑거리지 않게 고정해주어 좋긴 했지만, 다리는 횅하여 웬만하면 빨리 집에 데려가는 게 좋겠다 싶었던지 나츠는 친구들에게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남기곤 서둘러 자리를 떴다.

 

 

현대물.png

“집에 다 왔어.”

“웅~.“

“듣고는 있는 거야?”

 

처음엔 그냥 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깍지까지 끼고 있었고, 술에 단단히 취한 모양인지 몸을 가누질 못해 비틀거리던 루시에 나츠는 거의 팔짱까지 끼는 자세로 그러다 다친다며 가까이 오라고 루시를 제 쪽으로 끈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집에 다 온 나츠가 도착했다고 알렸지만, 루시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헤실헤실 웃으며 나츠의 어깨에 폭, 기대었다. 루시는 분명 좋은 기분에 취해 몸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중심을 잃고 제게 우연히 기댄 것일 터였다. 알고 있음에도 나츠는 루시가 제 어깨에 폭, 얼굴을 기댐과 동시에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나츠는 비어있는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곤 깊은 심호흡을 내뱉었다. 루시는 어떠한 의도 없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고, 제게 아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말이다. 번뜩, 정신줄을 잡은 나츠는 서둘러 집의 비밀번호를 누르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루시를 건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늦었으니까 어서 자.”

 

집 밖에서는 겨우겨우 밀어내는 것으로 루시의 취사를 진정시켰지만, 집에 들어온 이상 루시의 취사를 더 막을 이성이 안 될 거 같았던 나츠는 서둘러 루시를 방으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루시는 찡얼거리며 나츠랑 더 있을래! 하고 두 팔 벌려 나츠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루시의 행동에 나츠는 꽁꽁 언 얼음처럼 얼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음에도 나츠는 루시의 행동을 막을 겨를이 없었다. 자신에게 엉겨 붙는 루시에 두 손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손가락을 꿈틀거리던 나츠는 루시의 어깨를 붙잡아 제 품에서 팍, 떨어트려 놨다.

 

“너 이러고 나서 기억 못 할 거잖아!”

“나츠를 왜 기억 못 해!”

“그쪽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

 

이상하게 대답하는 루시에 머리를 짚던 나츠가 여기까지 오면서 많이 참았으니까 더는 다가오지 말라고 하니, 찡얼거리던 루시가 이상하게 조용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루시를 향해 시선을 돌려 보면, 루시는 울상이고 있었다. 왜 우는 건데?! 나츠는 당황해서 왜 그러냐며 쩔쩔매고 있으니 루시는 울먹이며 얘기했다.

 

“난, 나츠가 좋단 말이야.”

“…어?”

“다가오지 말라고 하지 마!”

 

울상이면서도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루시에 나츠는 꼴깍, 침을 삼켰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긴 한 걸까? 아니, 그녀는 지금 술기운에 내뱉은 말이고 그 말에는 자신이 기대하는 의미 따위 없을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을 텐데, 몸은 그러질 못했다. 우는 그녀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세게 끌어안았다. 갑자기 안긴 루시는 놀란 듯 휘둥그레지더니 나츠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다.

 

“안 가.”

“어‥?”

“나도 루시를 좋아하니까. ..루시 곁에 있을 거야.”

“헤, 다행이다….”

 

나츠가 내뱉은 의미는 루시와 달랐을 테지만, 루시는 안심하며 나츠의 가슴팍에 폭, 얼굴을 기댔다. 이렇게 가까이서 루시를 본 적이 있던가? 제 마음을 깨닫고 나서는 없었던 거 같다. 그녀를 의식하게 되니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고, 시끄러운 소리에 신경은 한층 예민해져 불규칙한 심박 수가 그녀에게 들릴까 걱정스러웠다. 그녀의 술기운이 옮기기라도 한 걸까, 진땀이 나고 얼굴에서 열이 달아올라 침을 조용히 삼켰다. 그녀를 감싸 안고 있는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만 같아 걸쳐 입은 가디건이 꾸겨지도록 쥐어 그녀를 끌어안으면, 코끝에 흐릿하게 스치는 그녀의 냄새에 가슴 안쪽이 일렁거렸다. 제 마음은 눈치조차 못 채지만, 다른 것엔 눈치가 좋은 그녀라면 제 마음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다른 마음이 들기 전에 그녀가 직접 떨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나츠는 루시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그런데 대답이 없고 정적이 흐르자 나츠는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루시를 불렀다.

 

“야. ..야, -루시!”

 

여전히 대답이 없자 술을 너무 먹어서 몸이 안 좋아지기라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루시를 떼어내 보면, 루시는 조용히 코-, 자고 있었다. 새근새근 자는 루시의 모습에 나츠의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빠직, 빠직, 분노가 쌓이는 소리와 함께 나츠는 불을 내뿜듯이 외쳤다.

 

“이 바보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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